초록빛 생명의 기운 듬뿍 받아 ‘始農’하던 날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5-05-04 02:16:56

초록빛 생명의 기운 듬뿍 받아 ‘始農’하던 날

 

하자마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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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마을 곳곳의 농부들이 저마다의 한해 농사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따뜻한 품을 내어주는 하늘과 땅, 자연에 감사하는 날이 있습니다. 온 주민이 함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모으기도 합니다. 바로 하자마을의 대표적인 봄 의례 시농제입니다.

 

지난 4월 15일 열린 올해 시농제의 제목은 ‘인사하는 씨앗’이었습니다. 인간의 죄가 쌓여가는 이 시절에도 어김없이 흙 위로 고개를 빼꼼, 새싹을 틔워 싱그러운 인사를 먼저 건네준 씨앗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더불어 시농 4년차인 우리는 이제 어떤 화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라는 즐거운 질문도 담았습니다. 하자마을 농부들과 마음을 내 찾아와 주신 손님들, 멀리 강원도 영월에서 온 연당중학교 어린 농부들까지 함께 모여 먹고, 놀고, 즐기며 씨앗에게 전할 신나는 기운을 모아본 시농제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농제 당일 이른 아침까지도 막바지 준비에 곳곳이 분주했는데요, 네트워크학교 청소년들은 잔치에 빠질 수 없는 춤과 노래를 준비하고, 나눔을 위해 씨앗을 정리하는 정성스러운 손길도 오고 갔습니다. 하자센터 판돌들 역시 팔 걷어 부치고 목화와 벼가 건강하게 자라날 새 텃밭을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한 켠에서는 제사에 올릴 음식 만드는 손길도 바쁩니다. 이렇듯 본격적인 시농제 전부터 서로의 자리에서 따뜻한 마음들이 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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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등 따습고, 사람들에 마음 따스운 오후, 하자작업장학교 공연팀의 신나는 바투카다 연주를 신호로 악귀와 나쁜 기운을 쫓고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전통 놀이인 지신밟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죽돌들이 직접 나무를 다듬고 채색을 해 만든 파수꾼들을 앞세우고 하자마을 안팎의 텃밭을 두루 둘러보았습니다. 각각의 텃밭에 자리 잡을 이 하자마을의 또 다른 농부들은 주민들이 자리를 비울 때 든든히 밭을 지켜줄 것입니다.

 

한바탕 마을을 돌아 지신밟기를 한 후에는 하자마을 각 팀 농부들의 한 해 농사계획을 돌아가며 들어보았습니다. 가장 많은 밭을 가꾸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 고등, 청년과정은 단순히 먹기 위해 짓는 농사를 넘어 식물과 사람의 새로운 만남을 고민하고, 회복을 꿈꾸는 농사를 그려본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어서 하자작업장학교 ‘현미 네 홉’ 농사 수업의 든든한 지원군인 짱짱이 축문을 읽어 내린 후 소지를 올렸고, 매년 흥겨운 우리 가락으로 풍년을 기원해 주는 이주원 선생의 비나리 공연이 뒤를 이었습니다.

 

마을 농부들의 초록빛 이야기는 소소한 공연들과 함께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자작업장학교 중등과정은 문래텃밭에 목화를 심었고, 신관 앞 길가 텃밭에는 백일홍들을 가꾼다고 합니다. 며칠 내내 연습했다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쑥스럽게 들려주는 모습이 꼭 백일홍을 닮은 듯 곱습니다. 노들텃밭에서 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로드스꼴라는 ‘우린 모두 도시농부야~ 남들은 채소를 수확하는데 나는 벌레를 수확하고 있네’라는 재치 넘치는 가사가 담긴 자작곡을 선보였고요. 하자센터 신관 허브에서는 4층 하하허허홀 앞 허브홀 야외 베란다 텃밭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물을 기르는데 토요진로학교, 방과후 마을형학교 청소년들이 밭을 함께 가꾸기로 했답니다. 기획 2팀, 책방 자원활동가들도 힘을 모으고 있고요. 허브 판돌들은 ‘초능력 농법’이라는 농사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했습니다.

 

시농제 마지막 공연은 쿨레칸과 함께 하는 하자작업장학교의 아프리칸 댄스였습니다. 비를 기원하고, 한 해 농사가 잘 되길 바라며 축제 때 춘다는 ‘보보동’을 선보이는 죽돌들의 모습은 농사의 고됨을 춤추고 노래하며 이겨내는 농부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너나할 것 없이 자유롭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흥겹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잔치에 먹을 것이 빠질 수야 없죠. 시농제 내내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뙤약볕 아래서도 예쁜 진달래 화전을 정성껏 구워내고, 꽃잎 동동 띄운 화면까지 준비해 주어 봄의 달콤함을 한껏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영셰스쿨에서 마련한 새콤달콤 유자춘곤면도 허기진 농부들 덕에 금방 동이 났답니다.

 

오후 늦게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던 잔치마당을 다함께 정리하고는 끝으로 기도하는 몸짓을 함께했습니다. 일상 속에서 씨앗과 흙, 땅과 하늘을 어떻게 만나면 좋은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참 많은 정성이 모였던 올해 시농제는 너와 나, 우리의 만남을 이어주는 대자연의 존재, 씨앗에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자마을 많은 이들이 농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한 켠 더 내놓고 가까워질 수 있다면 씨앗들이 주는 큰 은혜에 작은 화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올 한해 하자마을의 모든 농사와 농부들의 마음에 풍년이 들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금 소박한 나눔의 자리를 마련해 모두가 모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강화경(쥬디, 하자작업장학교 청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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