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을 상상하며 만난 이야기 – 설담의 페차쿠차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5-05-31 15:18:44

5월의 탈핵상영관, 계속되어야 할 이야기

 

하자작업장학교 리뷰

 

이 글은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김다울(설담)이 작년 가을과 올해 봄, 5월 탈핵상영관을 동료들과 함께 기획, 운영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이 어떠했는가를 정리하여 발표했던 것입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페차쿠차’라는 수업시간을 갖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학습하며 자신이 갖게 된 생각과 질문을 정교하게 만들어 글을 쓰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찾거나 직접 그려 페차쿠차 형식의 발표를 합니다. 그렇게 학생들 모두가 한 번씩 발표를 하다보면 한 학기 동안 함께 공부하며 갖게 된 질문과 키워드들이 모아지게 됩니다.

 

‘우리가 심어야 할 씨앗’이라는 주제로 지난 5월 한 달 간 진행했던 탈핵상영관을 마무리하며 김다울(설담)의 페차쿠차로 하자마을뉴스레터에 싣는 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탈핵을 상상하며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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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2011년에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에 있던 4개의 핵발전소가 폭발하면서 그 안에 있던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바깥으로 누출된 사고였습니다. 그 당시 일본 정부에서는 이 사고를 레벨 7의 수준이라 발표했고 이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중 최고 위험단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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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작업장학교에 입학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에 나오는 핵폭탄 정도였고, 제 주변에 있던 핵발전소나 송전탑에 대한 이야기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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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학교에서 ‘탈핵’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공부하면서 핵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핵발전소는 우라늄을 연소시켜 물을 끓이고, 거기에서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합니다. 처음 핵발전소의 작동 원리를 들었을 때는 생각보다 핵발전소가 위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족한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 전기인데,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게 가능한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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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벌어진 일들을 알게 되고는 핵발전소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누출된 방사능은 후쿠시마를 넘어서 일본 전역 그리고 주변의 이웃나라에도 그 피해가 미치고 있습니다. 이웃에 있는 우리도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는 않을지, 늘 먹는 반찬들이 방사능에 노출된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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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의 먹을거리로만 인식하기 이전에 소도 물고기도 돼지도 모두 한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방사능에 피폭되는지도 모르는 채 이유 없이 아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같은 생명으로서 끔찍하고 슬픈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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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처음 밀양에 갔습니다. 제가 처음 본 밀양은 산에는 커다란 송전탑이 서 있고, 마을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들이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밀양은 765kV 송전탑이 산과 들판, 마을과 집 근처에 세워지는 문제로 갈등이 심했습니다. 할머니들 앞을 막고 있는 수십 명의 경찰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들이 온 몸으로 송전탑을 막아내면서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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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밀양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약자를 희생시키는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3호기의 전기를 도시까지 운반하기 위해 세워져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한 할머니는 지금 밀양의 금수강산을 있는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산과 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은 순식간에 들과 밭, 그리고 밀양의 자연을 잃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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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럼에도 발전소가 없어지면 무슨 대책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핵발전소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는 지금 쓰는 전기량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핵발전소는 우리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핵발전소가 없는 세상을 상상한 계기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라는 노후 핵발전소가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를 알게 된 뒤, 한국에 있는 고리 1호기도 언제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는 재가동이 불가능한 노후 핵발전소라는 걸 알게 되자 더 이상 핵에너지에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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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없이는 어떻게 전기를 쓸 수 있는지, 자연과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무엇인지…. 저는 핵에 대해 공부할수록 궁금한 게 더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 이런 궁금함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첫 번째 탈핵상영관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의 숲’이라는 제목을 지었는데 핵사고가 일어나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자연과 동물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진행하는 핵실험과 핵발전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살아가는 숲과 나무, 동물과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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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숲’ 상영작 중 하나인 <트리 프로젝트>라는 영화에서는 방사능에 피폭된 나무들을 보살피는 의사가 나옵니다. 그 의사는 이미 방사능에 피폭된 나무들을 보면서도 아직 이 나무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트리 프로젝트>를 보면서 저는 제가 얼마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핵발전소의 피해로 고통받는 생명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고, 내가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이라도 핵발전소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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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을 찾아서>라는 영화에서는 핵폐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핵발전소를 돌리고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사람의 눈으로 10초만 쳐다봐도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물질입니다. 이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하려면 10만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아직 지구상에는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저장할 기술도, 장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50년을 유지하는 게 전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50년짜리 처리장을 무려 2,000개나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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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상영관을 하면서 “아직 대한민국에는 핵발전소 사고가 없었으니까 괜찮아”, 혹은 “사고만 안 일어나면 되는 문제 아니야?” 라는 말로는 더 이상 핵발전소를 유지하고 건설하는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핵폐기물들이 처리할 수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은 채 보관되고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의 세대에서 핵폐기물을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금도 방사능을 걱정하게 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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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핵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던 나라들도 점차 재생에너지의 투자를 시작하고 핵발전소 문을 차례대로 닫고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국내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국은 재생에너지와 탈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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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탈핵상영관을 마치고 나니 어쩌면 ‘탈핵’이라는 것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든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세대도 환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무차별적으로 개발하고, 자원을 금세 고갈시키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 지속된다면 나중에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환경과 자원은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도움 받는 에너지를 쓰면서 환경을 보존해 미래에 물려주는 일이 저는 탈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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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5월에 열린 두 번째 탈핵상영관 ‘우리가 심어야 할 씨앗’에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탈핵상영관에서 저는 ‘함께 살기’라는 단어를 생각했는데요. 지역의 문제는 그 지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의견이 이번 탈핵상영관을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번 상영작들이 경제개발 또는 편리함을 위한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공사들이 진행되는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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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번 탈핵상영관의 상영작들은 핵발전소가 등장하지는 않아도 결국 탈핵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밀양송전탑 문제를 비롯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내성천의 영주댐 그리고 미국의 금융자본과 영원한 경제성장까지 탈핵을 이야기할 때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지역과 세계의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 상영관을 준비하면서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구럼비 바위 위에 해군기지를 짓는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강정도 주민간의 갈등이 생기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밀양의 송전탑 문제 그리고 다른 지역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개발을 위한 불합리한 공사들보다 자연을 아끼고 미래에게 남겨주려는 모습이 네 개의 상영작들의 공통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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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간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원한 경제성장이 과연 가능한 걸까요?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인데 경제성장을 목표로 그 자원을 고갈시키고 핵에너지 같은 기술들로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자원들을 사용해 당장 눈에만 보이는 경제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영화에서는 우리가 에너지와 자원이 고갈된 것을 느끼는 순간에는 이미 지구의 자원은 바닥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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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의 사전적 의미는 핵무기, 핵발전소 따위의 핵과 관계된 모든 일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하자에서 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반핵이 아닌 탈핵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핵무기, 핵발전소만을 반대하고 막음으로써 끝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핵문제와 같이 지금까지 파괴한 자연들을 옆에서 방관해온 내 책임도 있음을 인정하며 내 주변부터 전기 플러그를 뽑고, 쓰레기를 줄이고, 에너지, 개발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듣는 모습을 보이는 것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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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한민국에는 23개의 가동 중인 핵발전소와 5개의 건설 중인 핵발전소, 6개의 계획 중인 핵발전소가 있으며 4만 개의 송전탑이 전국에 꽂혀있습니다. 지금 송전탑 공사를 멈추고 핵발전소의 가동과 건설을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는 ‘내가 전기를 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로 인한 핵발전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물고기들과 관계가 있고, 소와 돼지와 관계가 있고, 밀양과 관계가 있고, 일본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본만의 일이 아니라 내 밥상 앞에서도 느껴지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인 핵을 멈추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관계들을 점점 넓혀가면서 탈핵을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다울(설담, 하자작업장학교 3학기, 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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