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말/하자마을 ‘판돌/스태프’와 어른 벗에게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5-12-29 07:54:30

하자마을 ‘판돌/스태프’와 어른 벗들께

새해를 맞으며

 layout 2015-12-30

올해도 제주 바닷가로 왔습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검푸른 바위, 그리고

바람 지나는 소리를 오래 오래 듣고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에 사회적 의미를 붙이고

부산 떠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회적 시간’이 중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덕담을 주고받는 설날의 의미가 새롭습니다.

 

새해 인사 글을 써서 읽어보니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나 자신 청소년과 거리가 꽤 멀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자센터가 이제 자리를 잡으면서

청소년과 치열하게 만나기보다 ‘서비스’ 좋은 동네가 된 면도 있는 것 같고

청소년들이 입시에만 매달리다보니,

대안학교의 경우, ‘몸’ 만들기에 바쁘다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고

모두가 분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생각하며 새 글을 썼고

이 글을 버리려다가 일단 실험적으로 청소년용, 어른용으로 나누어 써본다 생각하고

마무리해서 실어봅니다.

 

<나눔 문화> 동네에서 보내온 소식지에서 박노해 시인은

“돈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이 있어도 삶이 없는 시대”를 이야기 하면서

‘희망이 없다’는 직감 때문에 우리가 더욱 막막하고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우리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릴 때,

그 때 희망은 온다는 말로 듣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너무 생각이 많고 너무 예민합니다.

믿음이 굳세거나 희박하고, 기대가 너무 크거나 적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각자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지요.

“만인이 만인을 불신하고 각자 자신의 진실을 진실이라 주장하는데,

각자의 진실보다 더 나쁜 거짓말은 없다.”

프레데릭 파작의 말처럼 바벨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성장주의 시대는 사회만이 아니라 개개인도 성장을 해야 했지요.

홀로 여행을 떠나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고 자신만의 사업을 이루어야 했지요.

그러나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보존을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나를 찾는 성장여행은 매우 허망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근대’의 몰락 또는 이차 근대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자기 결정권을 강조해온 근대에 대해 조금 더 같이 생각해보고 싶군요.

아시다시피 근대의 화두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봉건적 신분제에서 벗어나 그 나라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개인 국민으로 행사하는 자기 결정권(투표권을 포함하지요)의 의미로서의 자유,

또 하나는 ‘자유로운 노동자’로서 노동계약을 맺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의미에서의 자유.

그 자유를 구가해온 몇 세기 이후 우리가 만난 것은

개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면서 ‘혼밥’을 먹는 개인과

무시와 모욕을 견뎌야 하는 피로에 찌든 노동자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젊은 국민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끝내 제대로 노동할 기회를 얻지 못할 암울한 미래입니다.

그 미래를 지금 우리는 ‘삼포세대’와 ‘수저 계급론’과 ‘헬조선’ 이라는 단어로

이해하려고 노력중이고요.

 

그래서, 새해에는 ‘나’만의 세계에서 좀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덜 자유롭고 덜 까다로운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 하는 것이 한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마음에 좀 안 들어도 손발을 맞추면서

세상을 좋게 하는 일을 가볍게 해낼 수 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는 새해가 되면 합니다,

잠시 졸업식 참관을 갔던 필리핀 간디학교 교장 양희규 선생님이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이전 아이들은 부모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애완동물’ 같았는데

요즘은 ‘사육’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마음 깊이 “다들 고아가 돼 버린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나마 밀어주는 부모이기에 부모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엄마의 말을 아주 잘 듣지만 동시에 아주 큰 증오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번 민들레 잡지에서도 다츠루 우치타 선생님이 엄마를 무섭게 만드는 사회에 대해

도발적인 글을 기고했던데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추스르고 지켜가려 무진 애를 쓰는데

그러기에는 좀 너무 어리거나 자원이 너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을 만든 고레에다 감독은

희망과 만나는 어린 주인공들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고아라는 것을 알아차린 아이들,

자신이 난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어른들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자의 새해는 여기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이미 각자도생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고아와 같은 청소년들, 심정적 난민이 된 어른들이

좀 다르게 만나는 시공간을 열어가려고 합니다.

유아독존의 자리, 또는 고독한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여차하면 숨어들려고 파둔 자신만의 동굴에서 기어 나와

희망을 만날 수 있으면 합니다.

‘자유로운 근대인’이 아니라 만남 자체를 즐기는 ‘간주관적’존재로,

상호 의존하고 질문하고 협력하는 존재로,

하자 안에서 공동체적 고치를 친다면

우리 사회가 어느 날 나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최근 기후 변화와 최근 파리 테러사태에도 확인되고 있지만

거대한 근대 자본주의 체제는 급속하게 붕괴하고 있고

전문가만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이 체제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자 동네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를 모토로 삼은 지도 몇 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이 모토 아래 보다 많은, 그리고 다양한 청소년들과

즐거운 일, 놀이, 학습의 장을 펼쳐 가면 좋겠습니다.

나눔 부엌을 통해 식사를 나누고

물물 교환을 하는 작은 달시장을 통해

물건만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를 순환시키고

서로를 뽐내고 서로로부터 배우는 배움의 장을 열어 가면 합니다.

 

특히 그간 내공을 키워온 작업장학교와 로드스꼴라와 영셰프 스쿨은

올해 시작하는 목화학교와 오디세이학교와 함께

제도교육의 전환을 위한 시도에 즐겁게 참여하고

그간 학교에 묶인 학생들에게 숨통을 터주었던

직업체험 프로그램과 다양한 캠프, 청소년 운영위원회,

그리고 자전거 공방, 흙공방, 목공방 등의 작업실은

또 다른 초대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성숙해지고,

지구를 위험 속에 몰아넣는 에너지가 아닌 전환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전환마을의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가져갈 수 있으면 합니다.

 

고치를 치며 전환을 이루어가는 동네들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상생의 힘을 일상에서 확인하는 동네들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는 천사들의 동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해결해 갈 줄 아는,

각자 도생에 익숙해져 버린 몸을 바꾸어가고

상호교류를 위한 ‘의지와 능력’을 키워가는 동네를 말합니다.

오래된 규칙은 지키되, 잘못된 규칙은 바꾸어가는 동네인 것이지요.

 

이런 창의적 동네들과 종종 모여 잔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통 가능성’과 ‘번역 가능성’을 높이면서

다시 탯줄을 이어가는 시도를 한다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리 저리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작당을 하다보면

어느덧 ‘희망’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새해에는 덜 바빠서 좀 더 잔치를 벌일 수 있기 바라며

 

2016년을 맞으며 하자의 오래된 주민 조한 혜정 드림

 

**하자마을 주민 알로하가 덧붙이는 시

 layout 2015-12-30 (1)

무엇이 성공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평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 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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