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놀이활동가 리뷰 ‘함께 기록하며, 함께 기억하며’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6-12-07 15:54:01

2016 생각하는 청개구리 놀이활동가 리뷰 ‘함께 기록하며, 함께 기억하며’

하자허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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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에서 ‘놀이활동가’라는 그룹으로 활동한 지 벌써 삼년이 됐다. 놀이활동가 첫해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놀 사람들이 모였고 ‘왜 이 시대에 놀이가 중요한가’를 고민했다. ‘잘 살고 있나요? 잘 놀고 있나요?’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두 번째 해에는 다양한 공간에서 놀이터를 꾸며 어린이들을 만났다. 세 번째 해인 올해엔 놀이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기록을 토대로 하는 협의체를 꾸려 함께 고민하는 것에 집중했다.

 

기록 협의체는 혼자서만 하던 고민을 동료와 나누며 의견과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기록을 공유하면 함께 보다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록 속에서는 기록대상자와 기록자, 공간까지 보인다. 덕분에 구성원들 간의 구체적인 피드백이 가능해지며 서로의 경험기록을 토대로 다음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서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또한 ‘기록자’로써 놀이활동가는 어린이들의 행동과 말을 모아서 묶어내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산발적으로 펼쳐내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라포를 쌓아가며 이야기를 덧대어 주는 것, 이야기를 곱씹어가며 성실하게 기록하고 재해석을 하는 것이 ‘기록자’로써 놀이활동가의 역할이다. 기록자에 의해서 모이고 공유된 언어에는 사회적 쓸모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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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록을 통해 놀이활동가라는 역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나눴다. 어린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놀이활동가는 선생님도 아니고 마냥 친구도 아닌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어린이들과 만남 밖에서 놀이활동가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어린이와 어울려 신나게 노는 사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마치 ‘놀이동산 직원’이 된 것 같이 느끼기도 하고 마냥 놀기 만 한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상황에 맞게 변신해야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초인이 될 필요는 없다.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노는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각기 다른 능력의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기록이나 정리를 맡아서 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기록하리’, ‘정리하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기존의 동료들이 발견해 준 장점 덕분에 나는 새로운 동료들의 모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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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활동가를 통해 나는 놀이가 낯선 사람들이 순식간에 관계 맺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성인의 경우에도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낯선 타인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이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계속 관계에 대한 배움을 얻을 수 있고 이들을 거울삼아 나를 낯설게 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린이들과 만날 때 즐거움을 느낀다. 길지 않은 시간이더라도, 누군가의 기승전결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함께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이 드는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 일지라도 말이다. 특히 하자는 마을 커뮤니티가 있고 익숙한 어린이들과 비정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인사하고 함께 논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친구를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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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려는 의례
스무 살 때 우연히 만나서 계속 몸담고 있는 곳, 나는 하자센터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이 단체는 어느 곳보다도 자생적인 의례의 중요성을 아는 곳이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 공간을 익숙하게 만드는 의례적 미션을 하기도 하고, 어떤 커뮤니티 내에서는 밥을 먹을 때 다 같이 밥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밥을 같이 나눠먹는 나눔 부엌을 열기도 한다. 한 커뮤니티의 과정이 끝날 때마다 마무리 의례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이는 장을 연다. 그 형태는 자유이며 파티일 수도 있고, 책자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공연과 같은 결과물일 수도, 워크샵일 수도 있다. 다 같이 춤을 추며 마무리하는 왈츠를 배워 추기도 한다. 여기서의 의례는 구성원이 참여해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자발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례나 의례를 위한 의례와는 다르다.

 

의례는 어떤 사건을 기념비적으로 삼을 만한 기억의 순간을 마련해주며, 사람들과 함께 그 순간의 기쁨도 슬픔도 나누게 되며,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돌아보면 나는 이곳에서 ‘마무리’를 잘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기억은 어떻게든 잊혀 가지만 확실히 함께 기념했을 때, 내가 시간과 마음을 많이 썼을 때 오래 남는다. 우리가 올해를 유의미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글 | 남궁선아 (하리, 놀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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