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작업장학교 니나의 덴마크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교환학생 생활기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7-01-16 05:55:58

하자작업장학교 니나의 덴마크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교환학생 생활기

하자작업장학교 소식

 

02 04

 

# 10월 넷째, 다섯째 주 IPC 생활일지

 

이번 주부터 Alternative Weeks가 시작되었다. Alternative Weeks는 학생들이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2주간 다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다. 네 개의 그룹은 가나, 중앙 유럽,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여행을 가는 세 개의 그룹과 학교에 남아서 기존의 수업과는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한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학교에 남아서 다른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다. 활동은 아침에는 주로 예술 작업, 연극,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는 팀으로 나누어서 수업했고 오후에는 IPC 밖으로 나가서 바이킹 족에 대한 박물관에 가거나 북유럽에서 인기 있는 Floor ball과 같은 스포츠를 연습하여 헬싱외르 지역 대회에 참여 하기도 하고, 하루는 당일치기로 이웃 나라인 스웨덴에 가서 오래된 건축물을 둘러보기도 했다.

 

나는 아침 활동으로 예술 작업을 선택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쓰지 않아 창고에 쌓아둔 책상에 그림을 그려서 업 사이클링Up Cycling을 하기로 했다. 완성된 책상은 헬싱외르 시내에서 전시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팔아서 IPC의 장학금을 모으기로 했다. 무엇을 그릴지는 우리 각자의 마음이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나라의 전통 무늬를 그리거나 여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가 내가 IPC에 가지고 오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그려 넣었다. 하나둘씩 그리다 보니 노란 리본과 세월호의 뱃머리, 북극곰, 크리킨디와 다른 종류의 새들이 물고 온 다양한 모양의 물방울들이 있었다.

 

나는 IPC라는 공간에서 반년 동안 지낼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나누고 공감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같이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작업장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접하는 지점이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작업장학교와 IPC는 학교의 성격도, 속해있는 사람들도, 교육의 방식도 아주 다르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매체가 IPC에서 매 학기 바뀌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작업장학교와 IPC는 서로에게 ‘다른’ 영향을 받으며 더욱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이것은 IPC가 바라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런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오후 활동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덴마크 교도소에서 일하고 있는 교도관 Paul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덴마크의 교도소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Danish Open Prison이라고 불리고 다른 하나는 Danish Closed Prison이라고 한다. Paul은 Danish Open Prison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Danish Open Prison은 거의 Danish Folk High School의 구조와 비슷하고 Danish Closed Prison은 그보다 더 제한이 많고 폐쇄적이라고 한다. Danish Open Prison에서는 오전, 오후에는 정해진 수업, 워크숍, 활동이 있고 휴식 시간에는 스포츠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TV를 시청할 수 있다. 수감자들은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서 번 돈을 저금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돈으로 식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징역이 끝나고 그 돈으로 살아갈 수 있다. 교도소의 환경은 주로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 속해있고 나무를 비롯해 자연에 둘러 싸여있다. 따로 탈옥을 대비한 울타리 장치나 경비는 없고, 교도소로부터 수감자들이 도망을 가도 정해진 저녁 시간에 돌아오면 크게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족이나 친구들이 교도소에 찾아와 면회 시간을 갖는 것은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이다.

 

아시아나 아메리카에서 온 친구들은 덴마크 사회와 자신이 살아온 사회가 너무나도 달라서 괴리감을 느끼며 놀라서 교도소가 마치 복지시설 같다는 코멘트와 수많은 질문을 했다. 그에 대해 Paul은 범죄자, 수감자들에게 가해져야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제한이지 인권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범죄자들에게 직접적인 처벌, 형벌을 내리는 것보다 이 전의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 가족(특히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훨씬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또 Paul은 자신이 교도관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범죄자들을 신체적으로 탄압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도소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과 범죄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교도소에 돌아오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직업이 흥미롭다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도 질문을 하나 했다. 교도소에 있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이런 복지시설과 같은 교도소 구조에 만족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Paul은 물론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를 살인했다면 이런 구조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나에게 내가 교도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폭력을 당하고 치이고 살았으면 좋겠는지, 아니면 그들이 인간대우를 받으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으면서, 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덴마크라는 나라, 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드려 지는지 느낄 수 있었다.

 

덴마크 사회가 모든 사회의 답은 아니고 완벽한 구조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어떤 일을 실수로 저질러도, 일부러 선택해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하거나 다른 기회를 만들어준다. 범죄나 직업선택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개인이 하는 선택의, 행동의 자유를 준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지지만 사회는 최대한 계속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지원을 해준다. 사회 구조가 그 사회 안에 사는 사람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

 

세상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사회에서 자신의 인권,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그런 사회 구조가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을 포함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혐오와 대립이 생겨나고 모두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이윤을 먼저 바라보게 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모두가 각자 바라는 자유를 누리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서로를 해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함께 지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이게 되는 IPC는 그런 사회의 조그만 표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남은 시간 마저 지내면서 더 관찰하고 생각해봐야겠다.

 

# 11월 첫째, 둘째 주 IPC 생활일지

 

요즘 덴마크는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많이 난다. 무려 얼마 전 늦은 밤에는 IPC가 위치해있는 헬싱외르에 첫눈이 왔다.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온 친구들은 처음 보는 눈이라고 하여 같이 눈을 맞으며 첫눈을 기념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학생들이 수업시간 외에 주로 시간을 보내는 커먼룸Common Room의 벽난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의 장이 전보다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유난히 추웠던 날은 IPC학생회에서 벽난로 앞에서 각 나라의 시를 읽는 시간을 준비했다. IPC는 국제 Folk High School이기 때문에 수업을 듣거나 일상을 보낼 때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한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날은 모두가 일상에서 대화할 때와는 다른 음의 목소리로 모국어로 된 시를 읽었다. 새삼스럽게 IPC에 3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는지 또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 다음날에 시를 읽는 시간이 한번 더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자주 열릴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IPC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이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등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다. 가끔은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발표하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더 알고, 더 다양한 것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는 자기가 작업하는 유리공예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고, IPC Green Group은 자신들이 하는 활동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나도 하자작업장학교에 대해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작업장학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IPC에서 매일같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곳에서 살아왔고 그에 따라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이런 공간에서 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내가 과연 이 사람들과 처음부터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과 탈핵에 대해서, 세월호 세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존의 한국의 공교육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의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나 학교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하자작업장학교는 그중에 한 학교이고, 크리킨디 이야기와 함께 작업장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준비를 하여 발표를 했다.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말이 많이 막히고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발표를 들었던 친구들은 흥미로워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한국의 일반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건강에 나쁘다고 말했다. 반대로 일본과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은 교육 시스템이 자신의 나라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또 유럽에는 대안학교와 같은 개념의 학교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비슷하게 덴마크의 Folk High School 제도도 있고, 노르웨이의 공립학교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해서 그에 대응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꽤 많은 질문과 코멘트를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더 많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꺼냄으로 우리의 대화의 주제가 하나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를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앞으로 IPC에서 지낼 시간이 많지 않아 스스로 조금 압박을 주는 것 같다.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하며 지내려고 한다.

 

10월 30일에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CETA(Comprehensive Economic and Trade Agreement)와 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에 반대하는 시위에 다녀왔다. CETA는 캐나다와 유럽 연합, TTIP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체결, 추진하고 있는 국제 무역이다. 캐나다, 미국, 유럽연합 간의 무역 중 시장의 관세나 규제를 철폐하고 국제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등의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장의 관세나 규제가 철폐된다면 각 나라의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점령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역의 소규모 농장, 공장, 시장의 경제는 하락 할 것이다. 일자리 문제도 같다. 무역하면서 생겨나는 사무직이 늘어날지 몰라도 지역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시위는 코펜하겐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유럽의 수많은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 나는 시위에 갈 당시 자세한 정보는 모르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시위를 하는지 궁금하여 코펜하겐으로 가는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시위를 위해 모이자고 정한 코펜하겐 광장은 한 시민의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노래로 행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시위대의 행진이 시작되자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한 손에는 피켓과 현수막을, 다른 한 손에는 각자가 타고 온 자전거를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온 독일 친구는 오늘 모인 사람 수보다 자전거 수가 많을 것이라고, 누가 봐도 덴마크의 시위라며 농담을 던졌다. 행진 중에는 구호나 슬로건을 크게 외치지 않았고 모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걸어갔다. 경찰과의 충돌도 일절 없었다.

 

행진에 목적지는 코펜하겐의 중심에 있는 덴마크 의회 앞의 광장이었다. 광장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나무 팔레트로 뚝딱 무대를 만들어서 발언을 준비한 사람들을 앞으로 모았다. 발언은 모두 덴마크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해서 사람들의 말보다는 분위기에 관심이 갔다. 사람들이 발언을 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꽤 많은 사람이 모였었는데도 마이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발언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을 때, 덴마크 의회의 창문이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 그것을 알아차린 시민들은 몸을 의회 쪽으로 돌리고 “Naj Tak! Naj Tak!” 하고 외쳤다. Naj Tak은 덴마크어로 ‘No Thank you’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위는 차분하지만 확고하게 시민들의 입장을 드러냈다. 마치 코펜하겐에 한 바퀴 산책 나온 것 마냥 평화롭고 한적한 시위였다.

 

코펜하겐에 다녀온 이후에 더 깊게 시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Global Challenges와 같은 몇몇의 수업의 내용과도 이어지는 접점이 있고 나도 더 찾아보고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언제는 독일에서 온 나의 룸메이트이자 좋은 친구인 미라Mira와 수업 중에 보았던 환경다큐멘터리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에게 인상이 깊은 다큐멘터리를 소개를 해주었던 적이 있다. 나는 하자에서 함께 보았던 <This Changes Everything>을 소개해 주었다. 나에게 <This Changes Everything>은 기후변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현지 사람들이 대면하고 있는 경제, 산업, 일자리 등의 문제, 혹은 그에 맞서는 운동들을 통해 현실적으로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그것을 이야기했더니 미라는 나에게 <Tomorrow>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해주었다. 환경 다큐멘터리는 자주 관객들이 현실을 실감하여 자책하거나 절망감을 안겨주지만 <Tomorrow>는 오히려 새로운 영감을 심어주어서 기후변화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대선 토론 중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파리기후변화협정 COP21을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요즘 작업장학교에서 하는 탈핵 상영관이 생각이 나서 미라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에 이야기했던 두 개의 다큐멘터리와 다른 영화도 찾아봐서 기후변화 상영관을 열자고 했다! IPC Green Club에도 이야기해서 같이 해보자고 했다. 사실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할까,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같이 본 것만으로 마무리할까 하는 자세한 내용을 더 이야기 해봐야 한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함께 대선 토론을 보며 한숨을 쉬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Alternative Weeks가 끝나고 정상수업을 시작한다. 앞으로 IPC에서 지낼 시간이 약 한 달 정도 남았다. 그 시간을 어디에 집중하고 싶은지 조금씩 내용을 채워가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고민 중이다!

 

 

# 11월 셋째, 넷째 주 IPC 생활일지

 

해가 뜨지 않는다! 날씨는 눈이 온 후로부터 조금씩 풀리고 있지만, 며칠째 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수업 중에는 IPC의 선생님인 클라우스Claus가 유색인colored people은 백색인uncolored people보다 햇빛으로부터 받는 비타민D를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런 날씨에는 쉽게 우울해질 수 있으니 약국에 가서 비타민D를 따로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다. 그렇지만 요즘 날씨와 기분을 고려했을 때는 어서 약국에 들르고 싶다.

 

내가 12주 동안 고른 수업 중에는 Exploring Denmark라는 수업이 있다. 주로 덴마크의 역사, 정책,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수업이다. 그렇지만 나와 다른 12주 동안 지낼 사람들이 오기 전에 덴마크의 역사에 대한 공부는 이미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덴마크 복지시스템에 대한 공부로 수업을 시작했다.

 

지난 수업에서는 Lindehøj School라는 IPC 인근의 초, 중학교에서 International Communication이라는 수업을 선택한 14-16살 사이의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덴마크의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서로에게 흔치 않고 값진 시간이었다. 우리는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그들과 간단하게 IPC의 공간 투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IPC를 방문하는 것이 수업의 한 일부이기 때문인지 청소년들은 사전에 우리에게 물을 질문을 각자 몇 가지 만들어왔다.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왔는지, 자신의 나라의 어떤 점이 좋은지, IPC에 오기 전에 덴마크라고 했을 때 떠올랐던 첫인상과 여기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등등 간단한 질문들이었다. 대화가 오가면서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지만 또 그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내 이야기는 조금 아끼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나의 나라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질문을 되받아서 그들에게 덴마크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한 친구는 망설임 없이 세금을 많이 내는 제도가 좋다고 했다. 우리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아직 돈을 벌어보지 못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수입의 40%가 넘는 세금을 내기는 하지만 그만큼 무상 교육이나 의료, 기본 소득과 같은 복지 혜택을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노숙자Homeless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들은 일정한 수입이 없지만 국가에서 그들을 지원하고 직업을 구해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람직하고 세상에 필요하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자기는 나중에 노숙자는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지 않겠냐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친구는 조금 고민하더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실제로 말을 꺼내본 적은 많지 않지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자신이 싫은 것을 표현할 수 있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간단하게 들었던 예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을 매주 안건으로 낸다고 한다. 학교에서 핸드폰을 아예 걷는 것보다 학생들이 직접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자신을 조절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과 함께 말이다. 만약 수업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적발되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고 그에 대한 처벌은 아직 생각해보지 못해서 학급 내에서 논의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솔직히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낯선 사람이었던 우리에게 자신 있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는 잘 모르겠고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14살에 자신이 사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국가가 자신에게 최소한의 삶을 복지 시스템과 지원으로 보장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소득이 얼마인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어느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고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지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그들이 International Communication 수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니.

 

11월 25일은 국제 여성 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저녁에 ‘The Girl in the river; The Price of Forgiveness’라는 다큐멘터리를 같이 봤다. 파키스탄의 이야기였는데, 아버지와 삼촌이 원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하여 그들로부터 총을 맞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바Saba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후회는커녕 그녀를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들이 섬기는 쿠란에 살인은 용납되지 않지만 자신의 딸을 ‘바른길’로 이끄는 것은 이롭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먹먹하게 했다.

 

영화가 끝나고 모두가 탄식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뷰 겸 토론이 시작되었다.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이 난 아버지와 삼촌에 화가 난 친구도 있었고 사바의 상황에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의견은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도 먼 이야기 같지만 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로 모였다. 그리고 이런 일은 사바의 가족의 경우같이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분위기, 문화가 만들어가고 있고 이런 문화와 가치는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우리가 단번에 이건 잘 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면서 우리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분명히 당연시 여겨지는 여성혐오가 있고 우리는 그것부터 인식하고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영화를 보러 온 친구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 자체로도 좋지만 항상 대화를 흐지부지하게 끝내기 때문에 실제로 무언가를 하기가 어렵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인가 싶으면서도 IPC 같은 공간이 아니면 우리가 또 어떻게 모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나와 가까운 친구들부터 아쉽게 끊긴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덴마크는 점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물들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서 IPC의 생활과 수업들도 슬슬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다음주에는 이번 가을학기 동안 우리가 수업에서 했었던 합창, 연극, 작업 등을 발표하는 쇼하자와 같은 학기말 발표가 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들을 찬찬히 정리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 12월 첫째, 둘째 주 그리고 마지막 IPC 생활일지

 

03

 

지난 12주간 듣던 수업들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학기가 끝나기 전 2주 동안에는 Creative Weeks라고 자전거 여행, 스포츠, 뜨개질, 보드게임, 미래의 나에게 편지 쓰기, 세계의 성탄절과 새해 문화 알아보기, 도서관 정리 등(Bike Trip, Sports, Knitting Club, Board Game, Writing Letter, Christmas & New year, all over the world, library fixing) 여러 가지 쉬어가며 할 수 있는 활동과 수업을 골라서 듣는 기간이 있었다. 최소한 10개 이상의 수업을 골라야 했지만 Creative Weeks가 IPC의 막바지 기간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며 어우러질 수 있는 것들을 골랐다.

 

내가 고른 수업 중의 하나는 자전거 여행이었다. 약 20명 정도의 학생들과 한 명의 선생님이 학교 자전거를 빌려서 근처 헬싱외르에 있는 크리스마스마켓에 다녀왔다. 덴마크를 포함해서 모든 북유럽 국가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지역마다 아주 작은 소규모부터 시작해서 큰 도시의 중심가를 모두 채우는 크기까지 나라와 도시마다 다양한 문화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작은 가게와 크리스마스 물건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방이 있었고 가게 뒤에는 크게 농장이 있었다.

 

농장은 대부분 크리스마스마켓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산업을 위한 나무를 키우는 농원이었다. . 나무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크기, 종류, 색깔을 고를 수 있게 다양한 기준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나무는 매해 이른 봄에 심어서 일 년을 꾸준히 키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나무를 베고 돌아오는 해 봄에 다시 심는다. 밑동이 잘려나간 진짜 나무이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같은 나무를 오랫동안 쓸 수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 산업은 매해 이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아주 많은 나무들이 잘려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나무 수에 깜짝 놀라서 같이 갔던 선생님에게 이렇게 많은 나무를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자르냐고, 대량으로 나무를 베는 것에 대해 환경 단체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나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웃으며 북유럽의 크리스마스 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꾸미는 것이고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이것은 산업이기 이전에 뿌리가 깊은 문화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덧붙여서 항상 진짜 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지, 팔고 남은 나무들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 대답은 마켓 주인이 해주었는데, 북유럽에서는 진짜 나무를 키울 넓은 농장도 있고 일자리 문제에도 보탬이 되기 때문에 굳이 가짜 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 팔지 못한 나무는 땔감으로 잘라 다른 용도로 쓰고 팔기도 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마켓의 가게들과 가게에서 팔던 크리스마스 용품들은 아담하고 소박했고 주위에 장식되어있는 크리스마스트리들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가 일년 중 가장 크고 중요한 날인 나라, 지역에서 외국인, 외부인의 시선으로 트리 산업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스럽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라기보다는 나의 불편함과 다른 지역 문화의 익숙함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할지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이다. 조금 더 둘러보며 관찰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 더 더해보자면 12월이 들어서 IPC에도 수업시간이 아닐 때 이야기도 하고 숙제도 할 수 있는 거실 같은 공간인 Common Room에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아주 큰(그리고 진짜 나무로 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 인지도 잘 모르고 앞에서 말했던 크리스마스마켓에 다녀오고 나서는 더더욱 고민 속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12월 10일은 Creative Weeks의 마지막 날이자 국제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이었고 IPC에서는 이날을 기념하여 그 날에 대한 발표와 활동이 있었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발표 이후의 활동이었는데,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인권 운동가나 단체, 그들이 했었던 업적, 혹은 앞으로 해결되었으면 하는 인권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촛불을 켜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을 하는 활동 겸 퍼포먼스였다.

 

포괄적으로 인권을 침해 받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촛불을 키는 사람들도 있었고 IPC인만큼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모두에게 설명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온 친구는 자신의 고향과 가까운 빈민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에 대해 기도를 했고, 독일에서 온 친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몇몇의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와 거대한 사회구조 안에서 구조받지 못한 사람들을 애도했다.

 

나도 무엇을 이야기하며 촛불을 킬까 고민하다가 세월호가 생각이 났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로부터 구조받지 못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시민들은 이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를 상실했음을 낱낱이 보여줬다. 참사 이후에도 지금까지 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고 이를 통해 나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그에 대한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올해 세월호 2주기와 지난 봄 학기를 보내면서 ‘인권’이라는 키워드보다는 다른 키워드로 세월호를 말하고 싶었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권이라는 키워드는 아주 넓고 세월호 참사와 연관성이 많은 단어이긴 하지만 희생자들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했던 북 콘서트나 고정희 기행을 생각해보면 감정적인 부분을 넘어서, 현재에 일어나는 일도 중요하게 다루고 참여하되 앞으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하고 고민을 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에 더해서 나와 내 세대를, 세월호 세대를 어떻게 만들어갈까, 슬프게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힘으로 채워가는 세대가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 했던 것 또한 생각이 났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세월호는 잠시 접어두고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세월호 말고도 앞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인권이 무참하게 침해되고 있는 사건사고들을 생각해보니 끊이질 않았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 하자작업장에서 함께 애도하고 기억하자고 약속했던 일들이 머릿속에 줄을 섰다. 그러다 그 기간에 관심을 두고 읽고 있던 비선 실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대통령을 향한 비난이지만 더 넓게 생각했을 때 다시 한번 한국사회에 여성 혐오가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의 현황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여성 혐오가 일어나는 사회를 향해 기도하고 나에게 여성 혐오가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강남역 살인 사건과 피해자를 애도하며 초에 불을 켰다.

 

전등의 불을 꺼 두어서 어두웠던 Common Room이 크리스마스트리 위의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서 점점 밝아졌다. IPC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이 공간에 모인 우리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마음 이자 바람이었다. 나는 IPC이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큰 나무 앞에 있음에, 그리고 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일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 촛불들이 IPC의 Common Room을 밝혔던 것처럼 앞으로 세상도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은 종종 IPC가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나도 그 말이 이해가 가고 공감을 한다. 그렇지만 직접 IPC에서 지내기 전에는 그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세계시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을 할 줄 알았다. 내 안에서 세계의 축소판에 대한 부푼 기대가 있었다.

 

그렇지만 IPC의 사람들은 IPC를 찾아오는 각자만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직업을 갖기 전 징검다리 기간을 보내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몰라서, 살고 있던 지역에서의 내전을 피해 이민을 오기 위해서 등 아주 다양했다. 처음에는 실망도 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를 존중해야 했다. IPC는 전 세계에 사는 모두를 위한 시민들의 학교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자고 제안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모두 참여하는 의무가 될 수는 없었다.

 

또 IPC는 학기제 학교이기 때문에 매 학기마다 학교를 채우는 학생들이 바뀌고 그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와 환경도 바뀐다. 특히나 내가 보냈던 학기는 둘러앉아서 공부를 하기보다는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작업장학교에서 배우고 고민했던 주제들을 어떻게 나눌지 난감해했었다. 분위기와 내용을 조합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수업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발표도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서 지냈다. 그렇지만 곧 나는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는 것 같았고, IPC에서 보낼 날을 더 즐기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과 욕심을 잠시 접어두고 느긋한 학교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시간만 나면 사람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시시콜콜한 주제부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야기는 점점 각 나라의 정치, 교육, 건강 문제로 퍼져나갔다. 자기 지역에 대해 잘 몰라도 대화를 하다 보면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춤을 추느라 밤을 꼬박 새운 날도 많았다. 같은 노래에 맞춰 추는 춤도 사람의 지역이나 배경에 따라 특성이 드러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을 즐기며 나도 함께 내 몸에 익은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서로를 관찰하고 이해관계를 쌓는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사람을 모으거나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장이 열렸다. 사람들은 서로가 관심과 지식이 없었던 주제에 대해 흥미를 돋웠다. 물론 대화의 깊이는 매번 달랐고 주로 가볍게 이야기를 했고 항상 대화의 끝은 우리가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며 뭉뚱그려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가 마음에 두고 있던 세계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함께 바라는 세계가 되었다. 그 세계는 시민의 힘이 국가 정부의 힘보다 셌고, 여자와 남자, 그 외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혐오를 넘어서 이해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 세계는 큰 기업에 의지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작은 규모의 시장을 지지한다. 그 세계는 모두에게 각자가 원하는 교육권을 보장하고 의료를 비롯해 아주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 살고 싶었고 앞으로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힘쓸 것이다. 내가, 우리가 바라는 그 세계는 내가 IPC에 오기 전에 꿈꾸었던 세계보다 내용이 더 풍성하고 많은 관점이 포함되어있었다.

 

IPC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각 국가의 한가지의 입장이 아닌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솔직한 생각, 고민, 가치들을 나눌 수 있었다. 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역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대신해서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이 생겼다.

 

물론 작업장학교에서 6학기를 보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기는 하다. 작업장학교와 IPC의 배움은 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다른 관점으로 볼 때도 많았고 작업장학교 안에서 6학기가 돼서야 보이는 것과 드는 생각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난 시간에 대해 다른 죽돌들에게 이야기를 들을 날이 기대되고 나 또한 내가 IPC에서 보낸 시간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IPC에서 보낸 석 달은 생각대로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는 새해를 맞이하며 현장학습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잘 정리하며 앞으로를 잘 준비해야겠다.

 

글 | 은승채(니나,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

하자작업장학교 홈페이지 바로가기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