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학교 밖 인문학 여행 그 첫번째.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1-07-25 19:20:32

고3이 아닌 열아홉살의 삶과 인문학 공부

전효관(서울시 하자센터 센터장)

 

승리만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친구, 동료, 이웃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우울증이 만연하고, 폭력은 날로 심해진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시대이다.

교육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친밀성의 공간이어야 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은 치달아가는 경쟁에 노출되어 서로 따돌리고 상처받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특별할 것이 없는 남학생 세 명이 <우리는 인문학교다: 고3이 아닌 열아홉살의 삶과 인문학 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 고 3이었지만 입시공부 대신 자신들이 알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진행한 꽤 지난한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 명의 남학생은 놀고 싶어서 또 심심해서 학교 밖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품>이라는 한 청소년단체를 만났다. 얼마 동안 이 청소년단체와 함께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동네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축제 기획을 하면서도 “재미는 있지만 이래도 되는지” 한편으론 여전히 답답한 느낌이 들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체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왜 이렇게 되었고, 편하고 안정적인 삶과 다른 삶의 모델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공부를 해보기로 결단한다.

평소에 책을 읽거나 토론하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열아홉살 남학생들의 공부 과정은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공부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삶의 모델을 알게 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삶을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면의 정신적 힘이 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축제기획을 통해 해 왔던 ‘잘 노는 일’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얻은 ‘잘 살아가는 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책은 매끄럽지 않다. 또 청소년 인문학 공부를 위한 특별한 모델을 제안하지도 않는다. 다만 의지와 의지가 만날 수 있으면 인문학 공부는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은 특별한 교육 모델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학교, 가정, 동네, 사이버 공간 등이 서로 충돌하고 연결되는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방식에 대한 놀라운 실증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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