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교밖 인문학 여행’ 그 세번째

작성자 haja | 작성일 2011-08-27 12:12:40

[학교 밖 인문학] 담담히 앞가림하는 청소년들

못사는 집 아이로 산다는 것

얼마 전 눈길을 끄는 책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한울아카데미)가 출간됐다. 저자는 어쩌면 당연하고 뻔한 사실, 즉 ‘부모의 지위가 높을수록 사교육을 비롯해서 자녀에게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통념 앞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론부터 말해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 주된 이유는, 사교육의 수강 여부가 아니라 아이의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었다. 중산층 부모들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의욕을 불어넣고자 아이와의 감정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전략을 세우고 강도 높게 개입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아이들은 ‘좋은 학벌’을 향해 ‘스스로’ 달려간다. 반면, 못사는 집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면 좋지만 공부를 싫어하면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자신들의 어렵고 힘든 삶이 ‘낮은 학력’ 탓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못 배워도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이다.

‘좋은 학벌’은 노동시장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원칙적으로 우리 모두는 교육과 직업의 영역에 동등하게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못사는 집 아이들은 공부의욕을 불어넣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그 지름길의 길목에 서는 것조차 차단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못사는 집 아이들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하늘의 ‘랜덤’ 기술로 ‘우연히’ 만나게 된 부모에 따라 중세시대 신분제만큼이나 뛰어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자기 삶을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몸으로 배워가며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박탈된 청소년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든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길을 찾아보는 경험이다. ‘실제 현실’ 속에서 삶의 기술을 체화하고 스스로 터전을 만들어가는 아주 구체적인 경험의 장이 많아질 때 비로소 청소년들은 앞에 놓인 장벽을 어렵지 않게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박진숙(연금술사프로젝트 총괄 매니저)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society/201108/h2011081520373122020.htm&ver=v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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